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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소설에 대한 나의 인식을 바꾸는 책과 영화를 연달아보게 되었다.
책은 바로 이것이고, 영화는 <자전거를 탄 소년>이다.
그전엔 나에게 성장소설은, <그리운 메이 아줌마>나 <완득이> 정도의, 물론 아픔이 있고, 성장통이 있긴 하지만
뭔가 예쁘게 가공되거나 아름답게 포장된 슬픔을 맛보게 했던 것 같다.
최근이 이 두편의 책과 영화는
아이들의 성장통의 아픔이 얼마나 큰지를 현실적으로 나에게 같이 느끼게 해주었다.
책의 주인공인 오스카와, <자전거를 탄 소년>의 시릴, 그리고 오래전에 본 <인 어 베러 월드>의 크리스티안은 너무 많이 닮아 있었다.
납득할 수 없는 전제를 깔고, 수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내며 큰다.
오스카의 표현, 실제로는 오스카 아파트에 살고 있는 애꾸눈 할아버지의 표현대로 하자면
도끼를 휘두르는 전쟁이고, 도끼가 이기는 전쟁이라는.
오스카는, 그리고 시릴은, 그리고 크리스티안은 매번 선을 넘는 행동으로
엄마에게, 위탁모에게, 그리고 아빠에게 도끼를 휘두른다.
그래도 다행히, 책속에는, 영화속에는 그 도끼를 기꺼이 받아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아이들이 혹독한 성장기를 잘 겪어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 나는 유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어른이라.
오스카의 엄마에게, 시릴의 위탁모에게, 크리스타안의 아빠에게서
앞으로의 내 모습을 찾는다. 나는 과연 납득할 수 없는 일을 납득할 수 있을까. 보듬을 수 있을까. 안아줄 수 있을까.
책을 읽으며 내내 생각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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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인진 몰라도
책의 하반부와, 이 책을 끝내고 손에 들게 된 스캇 펙의 <끝나지 않은 여행>의 시작부분은
똑같은 문장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삶은 매우 복잡하다"
불가능한 삶의 문제를 푸는 간단한 해결책을, 늘 나도 마음에 품으며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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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론 이 책이 마음산책에서 나왔으면 더 예뻤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표지의 의미를 잘 알고 있으나,
내가 편집자였다면, 가뜩이나 긴 제목을 저렇게 눕혀 만들진 않았을 것이다.
차라리 원서의 제목이 적힌 손바닥에 한글제목을 넣었다면 더 좋을 뻔했다. 표4처럼.
그 외에도 저자에게 몇 가지 궁금한 사항이 있다.
볼드체 단어의 의미나 왜 1963년에 쓴 토머스의 편지만 두 개로 나누었는지, 할머니가 토머스 앞에 흘린 눈물, 그 첫번째 눈물은 기억을 못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저자의 실수인지. incredibly라는 단어에 집착이 있는지-
마치 내가 오스카가 되어 질문하고 싶은 것들이, 자꾸 생기는 책이었다.
